
[내용]
'나' 파트로클로스는 한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나의 어머니는 약간 모자란 여자였는데 아버지는 결혼식 전날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나 역시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아들은 아니었다. 나는 작고 가냘프고 느렸고, 다부지지도 않았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버지는 정말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정도였다.
나는 아홉살 때 틴다레스 왕의 딸 헬레네에게 구혼을 하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왕을 알현했다. 그녀는 많은 구혼자들 중 메넬라오스를 택했다. 아버지는 이 여행에 대해 두 번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다른 구혼자들과 함께 "그녀를 빼앗아가려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녀의 남편과 함께 싸우겠다"고 맹세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벌판에 서서 홀로 고독을 만끽하고 있을 때 한 귀족 집안의 아이가 다가와 내 주사위를 보여달라고 했다. 어느 사이엔가 귀족들은 왕자인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아무리 무례하게 굴어도 아버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주사위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그러자 아이는 내게 폭력을 휘두르려고 했다. 나는 그 아이를 힘껏 밀어버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이는 쓰러지면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혔고 그대로 사망했다.
나는 추방당했다.
내가 가게 된 곳은 프티아라는 나라였다. 펠레우스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그의 아내는 테티스라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인간을 경멸했고 그를 남편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킬레우스라는 아들을 낳았다.
내가 아킬레우스를 처음 본 건 5살 때 아버지가 주관하는 경기에서였다. 그는 달리기 경기에서 우승을 했고, 아버지는 그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뒤 내게 "아들은 저래야 하는 거다"라고 했다.
[감상]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일리아스>의 내용을 대부분 따라가지만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우스의 관계만은 조금 다르게 다룬다. 동성애 관계다. (역자분의 글에 따르면 <일리아스>에서는 두 사람을 연인관계로 단정짓지는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을 연인으로 규정한 것은 그 이후의 해석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일리아스>든, 영화 <트로이>든 오래 전에 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사촌관계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단지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의 신경전으로 전투에 나가지 않고 있다가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 손에 죽자 헥토르를 찾아가 죽인 것만은 기억하고 있는데, 도대체 파트로클로스가 누구이길래 아킬레우스가 저렇게까지 아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본문에서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 왕도 아들에게 어째서 파트로클로스를 동무로 선택했냐고 물었다. 아킬레우스는 '놀랍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그 말의 의미를 당장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달랐는지 언뜻 공감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의미를 이해한 건 역자분의 글을 읽고나서였다. "파트로클로스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
아킬레우스는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스러져가도 군의 수장인 아가멤논의 사과가 없으면 절대로 전투에 나서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버텼다. 반면 파트로클로스는 부상자들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결국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대신 나가겠다고 나섰다.
또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소중한 친구 브리세이스가 아가멤논에게 끌려가는 것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용기를 쥐어짜내 아가멤논을 찾아갔고 브리세이스를 절대 건드리지 못하도록 회유와 협박을 했다.
아킬레우스에게 명예가 가장 중요했다면 파트로클로스에겐 사람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르지만 평생 사랑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피로스는 철저하게 파트로클로스를 노예로 취급했고 아버지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따로 묻었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그렇게 잔인한 줄 몰랐다)
파트로클로스를 그렇게도 미워하고 경멸하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두 사람의 재회를 도왔다는 건 의외이면서도 다행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기대할 수 있는 결말이어서 좋았다.
조만간 일리아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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