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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타

방구석 미술관 - 조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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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샤갈은 1887년 러시아의 작은 마을 비테프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은 당시 게토였습니다. 게토는 유대인 거주 지역을 말합니다. 사실 말만 거주라고 표현했을 뿐이지 강제 격리시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샤갈은 유대인으로, 본래 이름은 '모이세 하츠켈레프'입니다.

당시 유대인은 거주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감옥처럼 지정된 지역에서 살아야했죠. 교육 역시 차별받았습니다.

(중략)

유대인을 향한 차별은 지역과 교육을 넘어 생명까지 위협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포그롬'입니다. 포그롬은 러시아어로 '파괴', '학살'을 의미합니다.

1881년 어느 술 취한 러시아인이 유대인 소유의 술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시답지 않은 일을 계기로 러시아인들이 집단을 이뤄 유대인 거주지인 게토로 쳐들어갑니다. 그리고 집과 세간을 파괴하고 무자비한 학살과 강간을 자행합니다. 이러한 러시아인들의 무자비한 포그롬 행위는 20세기 초까지 수백 차례나 이어집니다.

<마르크 샤갈> 중에서

[감상]


에드바르트 뭉크에서 마르셀 뒤샹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조에 한 획을 그은 십 여명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이중 에곤 실레의 그림과 마르크 샤갈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에곤 실레라는 화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화가이다. 그런데 그의 초창기 그림을 보고 있자니 '퇴폐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오래 보고 있기 힘든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가가 어린 시절 매독으로 가족을 잃은 적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 해도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그림들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는데 결국 그는 풍기문란죄로 23일간의 감옥살이를 경험했고 이후 수위를 낮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혹자는 그만의 개성을 잃어버렸다고도 했다는데 개성과 절제 사이의 균형을 찾음으로써 그의 그림이 점차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듯 하다.

에곤 실레

샤갈은 그에게 닥친 행운과 불행이 참 절묘(?)해서 기억에 남았다. 그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유학을 갔는데 당시 유대인이 그곳에 가려면 체류허가증이 필요했다고 한다. 다행히 유대인 변호사의 도움으로 허가증을 받아 미술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나름 성공을 거두고 금의환향했는데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파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에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간에 여럿 걸작들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전쟁 후 다시 파리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무렵, 이번엔 2차 대전이 터지면서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고 한다.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인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구석 미술관>에 실려 있는 화가들은 기존의 사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창적인 '회화언어'를 만들어낸 선구적인 사람들이다. 당연하지만 당시의 미술 아카데미들은 그들의 그림을 조롱하거나 비난했고 그들 역시 아카데미에서 자퇴를 하는 등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집단과는 거리를 두었다.

책을 읽다보니 흐름을 거스른다는 건 상당한 자신감이 있거나 열정이 있지 않는 한 꽤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의 유산 덕에 경제적 궁핍을 겪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빼고)

그들의 그림을 모두 좋아하진 않지만 외면받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길을 고수하고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모두 위대한 화가들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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