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기획실에서 일하는 위는 최근 차장으로 승진했다. 전례가 없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하지만 발령부서를 확인하고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언젠가 자신이 문제점을 정리해 보고를 올렸던 프로젝트 1팀이었던 것이다.
그를 차장으로 발탁한 사람은 '철혈이마'라는 별명을 가진 상무였다. 알고보니 상무는 조만간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프로젝트 1팀을 정리할 계획인데 위가 그 명분을 만드는데 일조해주길 바라고 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을 낸 것이었다. 상무는 위에게 자신의 의중을 밝히면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는대로 다시 기획실로 보내주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무는 프로젝트 1팀에게 내년 상반기까지 '올해 상반기 대비 실적 30% 신장'이라는 과제를 내렸다. 즉, 120억의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위가 팀원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긴박한 순간에도 그들은 잡담이나 나누고 있고, 거래처 회사 직원의 상가집에 가서 일을 돕는 등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부장마저 "즐겁게 일하면 어려움이 있어도 그것마저 즐거운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라는 황당한 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감상]
"자네, 아스퍼거 신드롬이란 말을 들어봤나?"
"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라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 세계 속에만 갇혀 있지."
"아스퍼거는 자폐와 달라. 이기적인 성격과도 달라.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아스퍼거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거든. 꼭 자네가 그렇다는 건 아냐. 요즘 사람들에게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거지."
"신경정신과 의사 친구랑 그런 얘기를 하다가 '사스퍼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네. 소셜 아스퍼거. 즉 사회적 아스퍼거라는 뜻이지. 아스퍼거는 대개 괴팍스럽기는 해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지 않아. 그렇지만 사스퍼거는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하지.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어. 문제는 그래서 결국 자신을 망치게 된다는 거야."
본문에 등장하는 '철혈이마'라는 별명을 가진 상무를 보면서 어딜 가나 저런 사람은 있지 라는 생각을 했다. "대의를 위해 일부의 희생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일부에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
그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까지 회사를 최고로 끌어올리려 했던 건, '이 회사의 주인은 나'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즉 '이 회사는 나의 것이고, 내 것이 2등이 되는 꼴은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파이를 가져갈 수도 있는 사람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다. 한 마디로 사스퍼거였다. 이런 사람에게도 배려가 통할 지 의문이 들었다.
<배려>는 2006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내용도 재밌고 교훈도 있어서 정말 감동했던 기억이 나는데 십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읽으니 감동이 덜하다. 그만큼 때가 묻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나는 배려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을 상대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도 있었고, 보여주기식 배려에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배려를 강요당해 불쾌한 적도 있었다.
나는 '배려'도 일종의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배려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다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 배려로 상처를 받는 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려', 참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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