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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유성 선배에게 내가 언제까지 라디오 일을 할지가 고민이라고 했더니 대번에 이렇게 말한다.
"뭘 몇 살까지 하겠다는 계획을 해? 그냥 해! 단 하나, 나이 든 사람이 방송하면 말투가 꼭 한문 선생님 같아지는데, 자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면 그땐 그만둬. 아직 그런 투는 안 붙었어. 그럼 계속하는 거지."
나는 또 질문했다.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 <동갑내기들의 노년 준비> -
떠나고 나서야 비로서 '떠남'을 생각했다. 진즉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선선한 거리를 두고 살았다면 그것 역시 '떠남'과 다르지 않았을텐데... 굳이 이렇게 짐 꾸려 떠날 일은 아니었다. 처음 선 자리에 계속 버티고 서 있는 한 그루 큰 나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뿌리조차 없었으니...
-<서른이 되고 싶었다>-
1973년이었던가. <아침 이슬>은 건전가요로 뽑혀서 상을 받았지만 그 후 느닷없이 금지곡이 되었다. 이유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시중에 나와 있던 모든 음반들이 압수 수거되고, 방송국 도서실에 비치되어 있던 자료에도 빨간 가위표가 그려진 채 커다랗게 '금지곡'이라고 써졌다.
<아침 이슬>에 이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역시 금지곡 명단에 올라 각 방송국 심의실에 통보가 되었다. 이 곡의 금지 사유를 읽으면서 배를 잡고 웃었다.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가. 이것은 퇴폐적인 가사다."
정부 해당 기관의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금지곡들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게다가 금지곡을 부른 가수인 나에게는 어떤 훈장과도 같은 특별한 의미가 주어졌다.
[감상]
가볍다면 가볍고, 무겁다면 무거운 에세이였다. 가끔 TV에서 양희은씨를 볼 때마다 "강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에세이를 읽어보니 강해질 수 밖에 없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비겁하게도 나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다는 안도감도 살짝 들었다.
사실 나는 양희은씨의 노래는 잘 모른다. 템포가 빠른 노래만 듣다보니 제목이랑 도입 부분만 약간 아는 정도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으면서 일상의 양희은씨의 삶에 좀 더 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 노후에 대한 생각, 친구들에 대한 생각...
특히 <서른이 되고 싶었다>에서 떠남에 대한 얘기가 좋았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선선한 거리를 두고 살았다면"이라는 문장에 공감이 갔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자주 고민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평범한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건지 절감하는 중이다. 그래서 이 소소하면서도(?) 따뜻한 얘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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