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값싸고 재미있는 티셔츠가 눈에 띄면 이내 사게 된다. 여기저기에서 홍보용 티셔츠도 받고,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완주 기념 티셔츠를 준다. 여행 가면 갈아입을 옷으로 그 지역 티셔츠를 사고...
잡지 <카사 브루터스> 음악 특집에서 내 레코드 수집에 관해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러고 보니 티셔츠 수집 같은 것도 하고 있어요"라고 무심코 말했더니 편집자가 "무라카미씨, 그걸로 연재 하나 해보시겠습니까?" 하고 제안했다. 그래서 제안한 대로 잡지 <뽀빠이>에 일 년 반 동안 티셔츠를 소재로 연재했다. 그게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다.
딱히 비싼 티셔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이 어쩌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낡은 티셔츠를 펼쳐놓은 뒤 사진을 찍고 거기에 관해 짧은 글을 쓴 것 뿐이어서 이런 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컬렉션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티셔츠는 'TONY TAKITANI' 티셔츠다. 마우이 섬 시골 마을의 자선매장에서 이 티셔츠를 발견하여 아마 1달러에 산 것 같다. 그리고 '토니 타키타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 내 맘대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을 썼고, 영화화까지 했다. 내가 인생에서 한 모든 투자 가운데 단연코 최고였을 것이다.

[감상]
유명작가는 정말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재로도 글을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아무튼 처음에 든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재밌는 일도 다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바로 이 '토니 타키타니' 티셔츠와 관련된 일화때문이었다. 알고보니 이 노란색 티셔츠는 선거용 티셔츠였다고 한다. 이름 아래 적혀 있는 House는 하원, D는 민주당원을 뜻하는 이니셜로, 토니라는 사람은 하와이 주 하원의원 민주당 후보였다고 한다. 소설이 출간되고 영어로 번역되고 난 뒤 당사자가 작가에게 편지를 보내서 알았다고 한다. 선거에서는 낙선했고 지금은 변호사로 지낸다고...
티셔츠 하나로 소설이 만들어지고, 영화가 나오고, 인연이 생긴다는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빵터지는 티셔츠 로고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인데 저 문장은 '도널드는 멍청이다'라는 스페인어란다. 선물로 받았다는데 아무래도 작가가 입고 다닌 적은 없었을 것 같다.
책에는 이 외에도 맥주, 동물, 스포츠와 관련된 티셔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제작한 티셔츠도 있는데 입고 다닌 적은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티셔츠는 스포츠채널 홍보용 티셔츠였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튀는 문구도 없고, 민망한 그림도 아니니 꽤 자주 입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멋진 티셔츠라고 썼다.
나도 한때는 뭔가를 구입해서 쟁여두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문구류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저렴하기도 하고 실용적이라 그랬던 것 같다. CD도 한 달에 4-5장씩 구입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중 절반 정도만 남아 있다. 공부를 겸해서 일본 관련 잡지를 몇 년 간 열심히 사들인적이 있는데 최근에 일부를 정리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물건을 줄이는 중이라 아마도 그런 수집욕은 다시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단지 언젠가 운동화를 사 모으는 사람을 보고 꽤 부럽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뭘 신을지 고민하는 상상을 하니 꽤 즐거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갑이 허락지 않으므로 참는걸로...
짧은 글에, 다양한 티셔츠 사진으로 눈이 즐거운 책이었지만, 무라카미 작가의 네임밸류덕에 나올 수 있었던 책이 아니었나싶다. 작가의 에세이집을 좋아하지만 이번 책은 좀 빈약한 느낌이랄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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