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키 유타카가 26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30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에게 열광하는 팬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전설적인 아티스트 오자키 유타카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문제아였던 학창시절]
오자키가 음악과 만난 건 초등학교 시절로, 전학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에 가는 척만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형의 클래식 기타를 잡은 것이 음악을 시작한 계기였다고 한다.
오자키는 품행이 단정한 학생은 아니어서 중학교 때는 흡연으로 정학 처분을 받은 적도 있고 고등학교 때도 흡연과 오토바이 사고, 음주 등 문제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동시에 음악에도 빠져 있었는데 고등학교 2학년 가을에 CBS 소니가 주최하는 오디션에 합격하여 83년 앨범 <17세의 지도>, 싱글 <15야>를 내고 정식 데뷔하게 된다. 85년에는 3번째 싱글 <졸업>이 오리콘 차트 20위를 차지했는데 과격한 가사가 화제가 되어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가사 중 "학교의 창문을 깨부순다"는 젊은이들의 모방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2013년에 가사에 영향을 받은 오다와라(小田原)시의 소년들이 학교 창문을 깬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중학생 두 명이 쇠망치와 철파이프로 학교 창문 50장 이상을 깨서 체포된 사건. 경찰 조사에서 두 사람은 혐의를 인정하면서 "듣고 있던 노래에서 비슷한 가사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성제, 불륜 등 복잡한 사생활]
노래와 함께 그의 과격한 사생활에도 주목이 모아졌다. 86년, 스무살이 된 오자키는 무기한 활동 휴지를 선언하고 6월에 미국으로 떠났다. 귀국 후 음악 활동을 재개하고 이듬해 7월부터 라이브 투어를 시작했지만 컨디션 난조로 중단하고 만다. 그리고 그 해 연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으니 각성제 단속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88년 2월 22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석방되는 날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500여명의 팬들이 도쿄 구치소 앞에 몰려들었다. 당시 본지도 구치소에서 나오는 오자키의 모습을 목격했는데 체중이 상당히 늘고 풍채가 좋은 모습이라 충격을 받았다. 그 후에는 다시 음악활동에 매진했고 88년에는 4번째 앨범인 <가로수>를 발매했다. 하지만 91년, 배우 사이토 유키(斉藤由貴)와의 불륜이 보도되면서 다시 한 번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92년 4월 25일 아침. 도쿄 아다치구 센주카와라초(千住河原町)의 가정집 마당에서 전라에 만취상태로 발견되었다. 소생 조치가 시행되었지만 결국 오후 12:06에 사망했다.
사인은 각성제 등 약물남용에 의한 폐수종으로 공표되었다. 4월 30일, 도쿄 분쿄구 호국사(護国寺)에서 거행된 추도식에는 4만명 가까이 되는 젊은이들이 모였고 차가운 비 속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만큼 그의 돌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일찍이 한 인터뷰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한, 계속 노래를 할 겁니다"라고 말했던 오자키. 그의 노래는 지금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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