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소설

흑소소설 - 히가시노 게이고

slow slow 2020. 10. 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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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스토커 입문]

 

하나코는 카페에서 주스를 마시다가 느닷없이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었고, 그 날 데이트도 나쁘지 않았는데 왜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 걸까.

 

그대로 돌아가버린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라도 묻고 싶었지만, 당장은 흥분상태라 '나'는 시간을 좀 갖고 나서 연락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일주일 후 하나코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은 이별통보 이상으로 황당한 것이었다. 그녀는 차였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이런 것 까지 가르쳐줘야 되냐며 핀잔을 주더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차인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라고 했다. 바로 스토커가 되는 것.

 

그 날 이후 '나'는 그녀를 미행하고 쓰레기까지 뒤지는 등 열심히 스토커 노릇을 했다.


[감상]

 

하나코는 왜 남자친구에게 스토커가 되라고 했을까.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쓰레기 봉투의 위치나 모양을 보고 느끼는 바가 컸던 게 아닐까 싶다.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고. 하지만 남자친구에게 그런 속을 드러낼 수는 없으니 헤어지자는 말로 자극을 주어 자신을 스토킹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나코의 속내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좀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흑소소설>은 제목에서 오는 느낌도 그렇고, 약간 풍자적인 요소가 강한 책이었다. 특히 앞의 네 편의 단편은 허세 가득한 작가들의 이야기인데 '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수상 후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중견 작가와, 신인상 수상 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신인작가가 볼 만 했다.

 

하나코도, 작가들도 속내는 결국 같은 것이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하지만 그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인기를 얻은 다음, 그런 인기 있는 자신을 누군가가 봐 주었으면 했다.

 

진짜 '쿨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하지만 '쿨해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허세'란 아마도 이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단편집도 인간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파헤친 책이었는데 제목처럼 나는 모든 단편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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