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서 좋은 직업 - 권남희

[내용]
일본 소설이 한창 붐이었던 시절이 있다. 일본 소설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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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붐을 타고 운 좋게 이 바닥에 자리를 잡았지만 정말로 왜 그렇게 일본 소설이 붐이었을까. 어느 해에는 시장 점유율이 한국 소설을 훌쩍 넘은 적도 있다. 아마 주로 책을 사는 젊은 계층의 취향이 무거운 것보다 가벼운 것, 문학적인 것보다 대중적인 것으로 바뀌면서 일본 소설을 찾게 된 게 아닐까.
사실 그 무렵에 재미있는 일본 소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원님 덕에 좋은 작품을 많이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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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붐이란 어차피 꺼지고 사라지기 마련이라 지금은 그런 과열 현상의 흔적도 볼 수 없다. 몇몇 잘 나가는 작가만 명목을 유지하는 정도다. 내가 일본어 번역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좋아했을텐데 밥줄과 관련돼서 순수하게 좋아할 수만은 없다. 후배들 일거리가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일본 문학을 많이 읽어달란 말은 입이 찢어져도 할 수 없다. 그냥 한 때는 그랬다는 얘기다.
<일본소설 붐이었던 시절>
[감상]
권남희 번역가의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역시 재밌고 유쾌한 긍정 에너지가 느껴진다. 단지 과거를 떠올리는 얘기가 나오면 자꾸 아련해진다.
<일본소설 붐이었던 시절>은 특히 그랬다.
처음 읽은 일본 소설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의 추천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는데 취향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은 난다.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주니 그들은 꽤 열광을 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책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무라카미 류 작가의 책을 꽤 좋아했다.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 작가와 온다 리쿠 작가의 소설도 좋아했다. 가네시로 가즈키 작가의 책은 완전 팬이었고, 오쿠다 히데오 작가는 작품에 따라 호불호가 있긴 했어도 대부분 끝까지 읽었다.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의 책은 지금도 열심히 읽는다.
일본에서 출간된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었었다. 특히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는 30대, 40대로 제목만 살짝 바꿔서 죽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시간에 강사분이 틈틈이 읽어줘서 기억에 남는 책이다.
일본 아이돌들도 인기가 많았다. 그 열기마저 사라졌다는 것을 실감케하는 것이 바로 대형 서점의 일본 서적 코너다. 예전엔 일본 연예잡지가 꽤 많았고 나도 종종 구입하러 들르곤 했었다. 한 번은 일본 잡지 기자분이 일본 서적 코너에 있는 나를 보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서 오케이하고 책을 보는 옆모습만 찍힌 적도 있다. 재밌는 추억 중 하나다. 지금은 일본 연예 잡지가 사라졌다.
서점에 갈 때마다 뭔가 아쉽고 텅빈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이 글이 유독 눈에 들어왔나보다.
<사주를 믿으세요?> 역시 하나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는데 나도 점을 보러 갔다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나온 적이 있어서다. 작가는 "좋은 미래도 나쁜 미래도 딱히 얘기하는 것도 없고,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점사 몇 마디하고 끝이었다"고 적었는데 내가 찾아간 철학관도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점을 보지 않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권남희 작가의 책은 '편하게 읽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힐링 에세이를 읽어도 그말이 그말 같아서 더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주 좋아하는 작가 세 분만 빼고). 권남희 작가의 책은 생생한 생활 속 이야기에, 번역가라는 직업의 실상(?)도 들려주고 있어 위로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작가들의 개인적인 일상과 출판 세계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유머가 있어 즐거웠다.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와 <번역에 살고 죽고>, 그리고 <혼자여서 좋은 직업까지>, 모두 즐겁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