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내용]
소설가 구즈하라 만타로는 신작 소설 <모래의 초점>의 원고를 마무리해서 출판사 '긴초샤'에 보냈다. 원고를 받은 담당 편집자 오기는 구즈하라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재밌는 내용에 감탄했다는 인사치레도 했는데 다만 한 가지 분량이 좀 아쉽다고 덧붙였다. <모래의 초점>은 4백자 원고지 총 8백장 분량이었다. 그런데 오기의 말에 따르면 요즘 화제가 되는 책들은 모두 분량이 천 장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오기는 구즈하라에게 <모래의 초점>을 화제작으로 만들고 싶으니 총 2천 장의 대장편으로 늘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결국 구즈하라는 소설을 총 1883장 분량으로 늘여서 출간했다. 얼마 후 출간된 책을 읽고 구즈하라는 몹시 후회했는데 내용이 너무 장황하고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게다가 책이 예전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기는 8백장 분량으로 책을 냈으면 서점에서조차 외면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서점에 가보니 다들 경쟁하듯이 책의 띠지에 매수를 광고하고 있었다.
오기는 구즈하라에게 다음 작품은 3천장을 목표로 하자고 제안했다. 구즈하라는 마침 야구 관련 소설을 구상중이었는데 더 집어 넣을 내용이 없다고 하자 오기는 소설에 추가로 넣을만한 자료까지 보내왔다. 드디어 <커브 볼>이 발매되는 날, 구즈하라는 직접 서점의 진열상태를 확인하러 나갔다가 자신의 책의 외양과 광고문구를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 <장편소설 살인사건> 중에서 -

[감상]
총 8건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과계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모두 작가들과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이과계 살인사건>은 "이 소설이 취향에 맞지 않는 분은 그냥 넘기세요"라는 친절한 안내문구가 첨부되어 있는데 전문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서 사건수사에 투입된 형사들마저 어느 순간부터 이해를 포기한 상태에서 관련자들의 증언을 들었을 정도다. 나 역시 그 과학자들이 하는 말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 했고 전체 흐름만 대충 따라갔는데 마지막에는 나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고집스럽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괴짜", 즉 사이비 이과계가 된 느낌이었다.
가장 재밌는 단편은 <장편소설 살인사건>이었다. 마지막 문장때문에 정말 빵터지고 말았는데 아마도 오기의 말대로 당분간 그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책 뒷편의 옮긴이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은 2002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에서 5위에 올랐으며 "갈릴레오 시리즈보다 이쪽이 진짜 히가시노 게이고다!"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걸작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정말 작가의 재치가 번득이는 단편들이었다. 사실 첫 단편 <세금 대책 살인사건>을 읽으면서 어딘가 엉뚱한 내용에 고개를 갸웃했고, 난해한 <이과계 살인사건> 읽으면서 책을 그만 덮을까도 했는데 끝까지 읽기를 잘 한 것 같다. 역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