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

[내용]
옛날 옛적에 한스라는 이름의 남자가 살고 있었다. 한스는 작은 오두막에서 혼자 살면서 매일 자신의 정원을 가꿨는데 그의 정원은 철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 그 일대에서는 가장 예쁜 정원으로 알려져 있었다.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한스는 친구도 아주 많았다. 그중 밀러라는 친구는 특히 한스에게 아주 헌신적이었는데 그는 '진정한 친구란 무엇이든 나눠갖는 법'이라며 한스의 정원에서 이런저런 꽃과 열매를 한바구니씩 집어가기도 했다.
한스는 밀러가 정말 친절하고 좋은 친구라며 흐뭇해했다. 하지만 밀러는 겨울이 되면 한스를 찾아오는 법이 없었다. 한스는 봄, 여름, 가을엔 꽃과 열매로 행복하고 여유도 있었지만 겨울엔 꽃도 열매도 없어 궁핍하게 지내야했는데 밀러는 "사람들이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는 혼자 내버려 두어야지 찾아가서 귀찮게 하는 것은 우정이 아니"라며 겨울에는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밀러는 아들이 한스를 초대하면 안 되냐고 물었을 때도 한스의 성격이 나빠질거라며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다시 봄이 오자 밀러는 한스의 집을 찾았다. 그리고 한스가 겨울에 빵을 사기 위해 손수레를 팔았다고 하자 자신의 집에 있는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나가고 바퀴에도 문제가 있는 손수레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손수레를 주었으니 한스도 그 보답으로 자신을 위해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밀러는 시도때도없이 한스를 불러내 일을 시켰다. 심부름을 보내기도 했고 지붕 수리를 시키기도 했고 양들을 데리고 산에 다녀오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내가 손수레도 주었는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 <헌신적인 친구> 중에서 -
[작품 배경설명 중에서]
책 뒷편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헌신적인 친구>는 "당시의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를 아는 독자라면 그저 하나의 민담풍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기심을 박애주의와 관대함으로 치장하는 지배층을 비판하면서, 지배층이 어떻게 윤리적 담론을 장악하고 그것을 착취의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영국과의 관계에 비추어보면 무섭도록 현실적인 풍자로 변모한다. 애초에 아일랜드가 기근을 겪게 된 것도, 아일랜드 농지를 영국으로 수출할 작물 위주로 이용하고 소작농들에게는 밭두둑에 아무렇게나 심어도 되는 감자밖에 남겨주지 않았던 영국 지주들의 처사때문이었다.
그 감자가 썩어버려 농민들이 굶어 죽어 가는 동안에도 영국으로의 농작물 수출은 계속되었다. 그러면서도 영국은 일방적인 원조가 아일랜드인들의 의존성과 게으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식량을 원조하지 않았고 모처럼 공공사업을 일으켜 임금을 주겠다면서도 실제로는 비현실적인 저임금에 지불 연체로 아일랜드인들을 좌절시켰다."
[감상]
동화라고 하기엔 해피엔딩이 거의 없고, 허무한 마무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작품에서는 마지막 몇 줄로 '해피엔딩'을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가 "비단 아이만을 위한 동화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결말들이었다.
<어부와 그의 영혼>을 제외하면 보통 30여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인데 뒤의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작품에 담긴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헌신적인 친구>에서 암시하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 <저만 알던 거인>에서 암시하는 인클로저운동, <특출한 로켓 불꽃>에서 보여지는 예술인들의 허세... 당시의 암울한 상황에 대한 조롱과 풍자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정말 작품 하나하나가 그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왕자>와 <저만 알던 거인>에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등장시키고 주인공들이 행복한 낙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무리한 것이 좋았다. (아마도 유일하게 해피엔딩으로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오스카 와일드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자세한 것은 몰랐는데 동성애로 인해 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한때는 아이에게 <저만 알던 거인>을 읽어주며 눈물을 짓던 아버지였는데 너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아픈 몸으로 술을 찾았고 주변에서 말리자 "내가 뭘 위해 살아야 하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두 편 밖에 몰랐다. 다른 작품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작품의 배경과 그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알게되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