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씨의 결혼은 작가의 사정때문? 탄생 75주년을 맞이한 '국민 만화'에 얽힌 놀라운 사실
2021년 4월로 탄생 75주년을 맞이하고 10월에는 애니메이션 방송 52년 주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국민 만화 <사자에상(サザエさん)>. 일요일 밤은 사자에씨와 가위바위보를 해야 끝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사자에씨 가족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상생활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만화 <사자에상>은 1946년 4월 22일에 첫 발표되었다. 애니메이션은 1969년 10월 5일 후지 TV를 통해 첫 방송되었으며 '최장 방영 애니메이션'으로 기네스 북에도 올라가 있다. 사자에상의 '가위 바위 보' 코너는 다음 회 예고 후, 사자에씨가 화면에 등장하여 시청자들을 향해 '가위 바위 보'를 내미는 코너로 그녀를 상대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즐기는 시청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이 가족과 관련하여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있다. 예를 들어 연재가 처음 시작되던 때에 사자에씨는 독신이었다. 그리고 사자에씨의 결혼은 작가의 사정에 의한 '정략결혼'이었다.
[사자에씨는 도쿄 태생이 아니었다?]
사자에씨의 일가가 살고 있는 곳은 도쿄 세타가야구(世田谷区)의 사쿠라신마치(桜新町)다. "사자에씨 길"이나 작가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씨의 미술관도 있어 전국적으로 '사자에씨 마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연재 시작 당시 사자에씨 가족이 거주하고 있던 곳은 후쿠오카(福岡)현이었다. 도쿄서민의 대표라고 생각했는데 사자에씨는 하카타(博多) 토박이었던 것이다.
사실 작가 하세가와 마치코씨는 15살에 도쿄에서 데뷔한, 일본 최초의 여성직업만화가였다. 하지만 24살에 태평양전쟁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후쿠오카현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사자에상>을 썼던 것이다. 후쿠오카 지방지 <석간 후쿠니치(夕刊 フクニチ)>의 연재만화로 데뷔했기 때문에 그 배경도 후쿠오카였다.
<사자에상>의 등장인물들 이름이 모두 바다와 관련이 있는 것도 후쿠오카의 모모치해안(百道海岸)을 산보하면서 구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자에는 '소라'를 의미한다. 그녀의 남동생 이름인 가쓰오는 '가다랑어', 여동생 이름인 와카메는 '미역'을 뜻한다.)
다만 하세가와씨는 원래 후쿠오카가 아닌 나가노(長野)로 이주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만약 나가노로 이주했다면 사자에 가족은 산과 관련된 이름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자에씨의 결혼은 작가의 사정에 의한 것]
지금은 덜렁덜렁하고 쾌활한 주부이지만 후쿠오카 시절 사자에씨는 독신으로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여순경 체험 취재나 작가의 원고를 받는 등의 업무를 하던 활동적인 '직업여성'이었다. 단지 덜렁대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여서 첫 회 등장 때 가족들이 격식을 차리고 독자들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에 과자를 먹으면서 등장해 혼이 나기도 했다. 독신이었기 때문에 이름은 물론 '이소노 사자에'였다.
사자에씨의 결혼은 작가 하세가와씨의 사정에 따른 것이었다. 하세가와씨는 후쿠오카에서 반년 정도 <사자에상>을 연재한 후, 대형 출판사로부터 일 의뢰를 받고 도쿄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석간 후쿠니치>의 연재를 끝내기 위해 사자에씨를 돌연 결혼시켰던 것이다.
연재를 마치기 위한 결혼이었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소개도 없었고 결혼 예복 차림의 사자에씨가 차를 타고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후쿠오카 독자들의 부활 요청이 끊이지 않아 9개월 만에 연재가 재개되었고 이후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면서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남편 마스오씨와 결혼해서 아들 다라오를 키우는 사자에씨와 그녀의 가족은 도쿄의 한 지붕 아래에서 3대가 시끌벅적하게 살아가는 명랑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덜렁대고 활기찬 사자에씨와 그 가족들이 일으키는 매일매일의 소동은 종전 후 힘들었던 시기에 '웃음'을 가져다 준 몇 안 되는 오락 중 하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