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 히가시노 게이고 (스포있음)

[내용]
우지이에 마리코는 언젠가부터 엄마가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느낌이 확신으로 굳어진 건 기숙학교 진학을 제안했을 때였다. 자신을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 기숙학교를 제안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학기를 마친 후 여름방학을 맞이해 집에 돌아오자 부모님은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태도는 석연치 않은 데가 있었다. 그리고 겨울방학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악몽같은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집에 큰 불이 났고, 엄마가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고바야시 후타바는 밴드부의 보컬이다. 그리고 그녀와 그녀의 밴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예선을 막 통과한 참이다. 하지만 후타바의 어머니는 그녀의 TV 출연을 극구 말렸다. 밴드를 시작할 때부터 조건이었다. 어디까지나 취미로만 하고 절대로 프로가 되지 말 것. 그런데 실력을 인정받아 예선까지 통과했으니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후타바는 엄마 몰래 TV에 출연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엄마는 의문의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감상]
책을 읽고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의 <아일랜드>

2005년 작으로, 인간들에게 철저하게 속은 복제인간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복제인간들은 모체가 되는 인간이 병이 나면 건강한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데, 그들은 자신이 복제인간인지도 모를 뿐더러 언젠가 낙원에 가게 될 것이라는 희망까지 품고 살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는다.
우지이에 마리코와 고바야시 후타바의 인생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두 사람은 성과를 얻고 싶은 과학자,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었던 남자, 아이를 갖고 싶었던 여자 때문에 태어났고 이젠 권력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치료제가 되어야 했다.
그들을 순수한 인격체로 대한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 뿐으로, 그나마도 정체를 알고 난 이후에는 태도가 바뀌어 하나의 실험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대했다. 그럼에도 실험체에게 이해해 달라는 말을 하다니,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과 함께 참 편한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마리코의 아버지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글을 남기고 모든 것을 일거에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미 그들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앞으로 어찌될 지 불 보듯 뻔하단 생각이 들어 그리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었다.
※ <분신>은 1993년 작으로, 이미 2005년 경에 <레몬>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레몬은 두 사람이 즐겨 먹는 과일로, 두 사람이 같은 성향을 가진 인격체라는 상징과도 같은 소재다. 2019년에 새로 출간되면서 <분신>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는데 원작도 <분신>이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는 2012년에 드라마로도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