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번역에 살고 죽고 - 권남희

slow slow 2021. 10. 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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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나도 그랬지만, 누구나 처음 번역을 할 때는 단어와 조사를 빠뜨리지 않고 충실하게 옮기는 것이 옳은 줄 안다. 하긴 처음부터 멋대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하는 것보다 정석대로 옮기는 게 바른자세이긴 하다. 그런데 초보자들의 문제는 그동안 독해만 해왔지, 번역은 처음 하기 때문에 독해와 번역의 차이를 모른다는 것이다. 해석이 정확하다고 번역을 잘한 건 아니다. 사전적인 뜻에만 충실해서는 좋은 번역을 할 수가 없다.

<부품이냐 비닐봉지냐> 중에서

[감상]


한때 번역에 적을 두고 공부한 적이 있다. 실제 번역도 여러 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과분하게 주어진 기회들이었던 것 같다.

<번역에 살고 죽고>는 번역가 지망생이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다. 책을 읽다보니 내가 번역공부를 하던 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는데... 그 중 한 회사와의 면접이 떠올라 쓴웃음이 났다.

그곳은 교육 아카데미와 번역 에이전시를 동시에 운영하는 곳이었다. 당시 면접을 기다리던 내게 한 여직원이 한 말이 지금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날 나는 상무님정도 되는 분과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 정도 규모의 출판사의 상무님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요"라고 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영광으로 알라는 얘기였다.

그 흔치 않은 면접에서는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번역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고, 나는 심란한 마음을 안고 회사를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후에 그곳에서 면접을 본 분이 "정장까지 차려 입고 간 자신이 너무 어이없게 느껴졌다"라고 글을 올려 나도 심란한 마음을 담아 댓글을 올렸더니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그런 글을 쓰셨더군요"라고...

고마운 분들도 많았다. 그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마음인 것이, 미천한 실력임에도 기회를 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던 것이다. (이 글을 보실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당시 실력부족으로 자신감 바닥이어서 그랬던거지, 절대 다른 불만이 있어서 제안을 거절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번역에 살고 죽고>를 읽고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번역은 정말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어느 분야가 그렇지 않겠나만 나는 정말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사람들만 번역할 자격이 있는 거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번역가분들도 모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되었다.

동시에 무언가에 몰입했던 그 시기가 떠올라 조금 아련해지기도 했고.

번역공부를 할 생각은 없지만 해석은 즐거우므로 독해공부는 꾸준히 하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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