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
내 옆에 있는 사람 - 이병률
slow slow
2021. 6. 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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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낯선 전화번호를 통해 부음을 들었다.
"기억 못하실 것도 같은데 문경에 사는 김 아무개 씨가 저희 아버님이세요. 한 십 년 전에 아버지를 만난 적 있으시다구요."
더듬더듬 한참 뒤로 시간을 돌렸다. 아, 그분. 그분을 떠올리는데 잠깐 사과 향이 스쳤다.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래전 여행길,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한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사과밭 앞에서 사진을 찍다가 저 안쪽에서 지게에다 사과를 지고 나오는 모습을 마주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장례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상주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 몇 장을 인화해 보내드린 적이 있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었다. 하필 그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모셔졌으며 그 속에서 어르신은 아무려나 활짝 웃고 있었다.
<달빛이 못다 한 마음을 비추네> 중에서
[감상]
부제가 '이병률 여행산문집'이라고 되어있지만 주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20대 후반에 사고로 시력을 잃은 남자, 일본 사세보에서 태어나신 노인, 영화 '쉬리'를 볼 때마다 우는 베트남 근로자, 흑산도에서 알게 된 소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다가, 쓸쓸해지고, 철렁하는 것 같다가, 조금 울고 싶어지기도 하는 그런 책이다.
그러다 익숙한 동네 이름이 나오면 잠시 반가워하다가, 당시의 동네 모습을 묘사한 글에서는 그런 곳이 있었던 것도 같네라며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하고... 혼자 이런저런 감상에 젖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몇 년 전 병원에서 읽었더랬다. 당시에 참 좋은 글이라며 나중에 다시 읽자 생각했는데 작년에 다시 읽으려고 하니 글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읽으니 이번엔 또 글 하나하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내가 '관계'의 기복을 느끼고 있어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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